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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넘어로 개나리가 손내밀고, 봄기운이 완연한 시기입니다. 저기 산 중턱엔 여리여리한 진달래가 새색시처럼 피어있습니다. 저는 숨을 죽이고, 맺힌 꽃봉오리들, 막 펼쳐 질 찰라의 잎들을 바라봅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 저는 더욱 민감해진 솜털을 가지고 이 봄을 더욱 민감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무렵 이 책 '신갈나무 투쟁기'가 제게로 왔습니다. 신갈나무 투쟁기는 차윤정, 전승훈님이 쓰셨고, 지성사에서 2009년에 발행한 개정판으로 우리나라 숲에서 소나무와 함께 상당히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참나무의 일종, 신갈나무가 그 주인공 입니다.

 

어미 신갈 나무는 소나무들 틈에서 극적으로 살아갑니다. 그 자식들, 도토리들은 어미틈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으로 험한 세상살이를 겪으며 삶의 자리를 잡아갑니다. 각자의 운명에 따라, 땅으로 곤두박질 쳐져서 구르고 굴러 흩어집니다. 두꺼운 껍질과 떫은 속은 어미가 보호차원에서 자식 도토리들에게 마련하여 준 것입니다. 

그 어떤 것 하나라도 거져 되는 것은 없습니다. 껍질 안에 채워져있는 탄수화물 덩어리는 신갈나무 어미가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자식 도토리들에게 최선을 다해 마련하여 골고루 나누어준 것입니다. 이제 어린 토토리들은 오직 그 딱딱한 탄수화물 덩어리만를 밑천으로,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터전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린 도토리들은 가을에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 흔한 떡잎 하나 없이, 곧바로 낙엽 밑에서 뿌리를 내리고 숨죽여 겨울을 나게 됩니다. 거긴엔 어미 신갈나무의 앞선 계산이 있었습니다. 그 추위속에서  떡잎하나 내보내는 것도 아까워 자제시키고, 땅속에서 겨울을 나게 한 것입니다. 

또,각종 예측하기 어려운 땅속 생물로부터 보호해주고자 떡잎마저 단단한 껍질의 외투로 감싸준 것이었습니다. 자식을 보호하려고, 이 모든 것은 신갈나무 어미가 미리 지혜를 부린 것입니다. 

모든 신갈나무 어미들에게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런 지혜가 몸 속에 새겨있는 듯 여겨집니다. 신갈나무의 열매는 막 싹이 나서 어리고 여리게만 보여도 그 뿌리는 아주 깊디 깊게 자라나 흙 속에 뻗어 있습니다. 오래 살아남는 지혜로써, 그 또한 신갈나무가 터득한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신갈나무의 열매가 떫떠름하지 않고 달콤했다면 아마 오늘날 인간들에게 길들여져 우리나라 숲에서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갈나무의 이런 저력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숲에서 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갖도록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렇듯 이 책은 어린 신갈나무가 터전을 잡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숨죽이며 따라가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숲에 들어서면 어여쁜 꽃을 감상하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기도하며 한껏 여유로움을 만긱하곤 했습니다. 

이 책을 접하고 난 지금의 저는 숲속에서 웬일로 작은 긴장감마저 감돕니다. 저와 같은 하나의 생명으로서, 신갈나무 열매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나려고 갖은 지혜를 모읍니다. 

햇빛을 받기 위하여 우위적인 공간을 차지하며 생명으로서 입지를 다지려고 합니다. 저의 삶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책의 큰 특징은 신갈나무에 대해 의인화적인 표현을 쓰고, 철저히 신갈나무의 입장이되어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읽는 이들도 어느새 신갈나무의 시각이 되어 숲속에 머물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 스스로도 예기치 못한 수많은 경험을 합니다. 온갖 지혜를 짜내어 제 삶이 최상으로 펼쳐질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매 순간, 긴장을 늦추지않고 최상의 선택을 해나가려 합니다. 

이런 내 모습과 신갈나무가 서로 닮아 있는 것을 봅니다. 생명으로서 식물이지만 저는 신갈나무와 동류의식을 느낍니다.

 

우리나라는 산의 비중이 참 많습니다. 

산에 침엽수류의 소나무와 활엽수류의 참나무가 공존 할 경우 훗날, 활엽수가 그곳을 장악해 버린다고 합니다. 

활엽수인 신갈 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의 그 넓디넓은 산야의 제일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숲의 안방마님이라 생각합니다. 전 이런 신갈나무에 매력을 느꼈고, 

이 책은 저를 숲속 신갈나무의 세계로 흥미진지하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신갈나무는 초반에 길이 성장을 하다가 어느정도 키가 크고 나서야 옆으로 가지들이 넓게 펼쳐 진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초라해지지않고, 더욱 여유롭고 넉넉한 풍채를 지니게되는 신갈나무를 본 받고 싶습니다. 

신갈나무 주위에는 소나무와 달리 다양한 식물종이 자라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둘레에 철쭉이 피어있는 모습들을 많이 본것도 같습니다.

 

이 책은 책 곳곳에 생생한 사진과 함께 숲속의 그 밖의 다양한 식물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무의 나이테, 수목 한계선, 식물의 생체시계, 식물의 털, 종자휴면, 나무의 외투, 단풍의 비밀등 숲을 한층 더 느끼는데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숲을 아는 만큼 볼것이고 보는 만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숲을 더욱 깊이 느끼는 데 있어서 이 책은 제게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신갈나무에 붙어 살아가는 겨우살이라는 기생식물이 있습니다. 신갈나무의 양분과 물길에 뿌리를 밖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곳의 신갈나무 가지는 양식을 강탈당해서 말라죽습니다. 

또다른 어떤 기생식물은 식물인데도 양분을 만드는 잎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하니, 제게는 참 묘한 식물입니다. 또 칡넝쿨과 같은 덩굴식물들이 나무의 부피성장을 막아 목을 조이는 내용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엔 여린 줄기로 다른 나무를 감싸다가 어느새 굵고 딱딱한 줄기로 목을 조이는 덩굴 식물들의 위세도 참 만만치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은 어느 종을 막론하고 알싸하지 않은 종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갈나무 어미와 자식들은 서로 멀리 떨어질 수 록 이롭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어진 제한된 양분이나 제한된 공간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자식간에 멀리 떨어지고자 하는 식물들의 몸부림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노력들이 눈물겹기도 하고, 한편 기가막힌 발상에 혀를 내두르게도 됩니다.  

어미는 종자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그 무엇이든지 달라붙게해야 하는 정언명령이 있습니다. 

되도록 멀리 날라가게끔 분출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가득 품고 있어야합니다. 

향기로운 과육으로 어떻게든 유혹해 보려 합니다. 

부모가 어떻게든 자식을 멀리 놓이게 하려고 아득한 세월속에서 쌓여온 다양한 몸부림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어떤 식물에겐 갑자기 햇볕이 쏟아지는 하늘이 열리고 또, 그늘에 있던 작은 식물들에겐 저항도 못하고 무참히 짓이겨 지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운명입니다. 

땅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 다음 세대를 위해 자양분으로 돌아갑니다. 이 생명의 절대적이고도 우아한 숲의 순환속에 우리 인간도 예외없이 놓여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너무 소란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봄 생강나무의 노란꽃이 꽤 선두로 모습을 내보이고, 지금은 목련꽃이 피고 있습니다. 기다리던 빗살나무의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보고 싶은 제비꽃도 곧 만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접하고 나서는 더욱 여느 해 봄날 같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각자의 최적의 타이밍을 잡으려는 식물들의 야무진 생명력들이 느껴집니다.  

가을에 모자 쓴 도토리가 얼굴을 내밀면 그 어미 신갈나무의 노고가 느껴질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다 발길에 채이는 작은 도토리를 만나도 그냥 지나치치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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