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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풀들의 전략'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미카미 오사무의 삽화들은 참 정교하고 따뜻합니다. 읽는 내내 저의 친절한 도우미가 돼 주었습니다. 새삼이라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기생식물이 나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뿌리도없고, 잎도 없는 식물이라고 합니다. 땅에서 양분도 빨아들일 수 없고, 잎이 없어 광합성도 못 한다면 생명으로서 식을 얻기위하여 얼마나 상대 식물을 겨냥한 집중도가 높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다른 덩굴과 식물은 사람이 세운 막대나 아무 식물이든 상관없이 타고 오르는 반면, 새삼은 주변 식물을 어루만져서 힘을 잃은 식물은 본 척 않고 활기에 차 있는 식물만을 골라서 타고 올라 간다고 합니다. 

뿌리와 잎을 없애고 오로지 상대 식물에게서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살아가기로 결정한 새삼의 단호함,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스멀 스멀 상대식물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식물이라기 보다는 사냥감을 노리는 뱀과 같이 여겨져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질경이는 유난히 길가에 자라있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질경이의 앞선 계산이었는지는 몰랐습니다. 자기 자신을 짓밟는 사람이나 동물의 발, 자동차의 타이어등에 달라 붙게 해서 질경이는 자신의 씨앗을 퍼뜨려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댓가없이 거져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 질경이는 무수한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짓밟히고도 꿋꿋하게 생존해 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되도록이면 키를 낮춰야 했고 그 몸조직을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조화시켜 유연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꺾이지 않도록 꽃줄기를 비스듬히 뻗는 전략은 질경이에겐 기본입니다. 다른 식물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길가를 선택해서 자신을 적응켜 살아온 질경이가 새삼 대단해 보입니다. 짓밟힘을 선택하고 또 그것을 역이용해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는 기회로 삼았던 질경이에게서 연약한 작은 풀이지만 대담함을 느낍니다.

 

여름철에 산책을 하다보면 커다랗게 피어있는 참나리 꽃이 시원한 느낌을 주곤 합니다. 참나리꽃은 실은 제가 아니라 가루받이를 해 줄 호랑나비를 기다렸을 겁니다. 책 내용에서 참나리가 얼마나 용의주도한 꽃인지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호랑나비가 행여 꿀만 먹고 그냥가지 않도록 나리꽃은 얼굴을 아래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호랑나비가 겨우 매달려 꿀을 먹는 동안 꽃가루를 잔뜩 묻 힐 수 있게 말입니다. 수술도 길게 T자로 뻗어나와 있어서 자유자재로 꽃밥이 움직여 나비의 몸에 어느 각도라도 쉽게 닿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 뿐인가요? 

암술 끝의 점액이라든지, 끈끈이 꽃가루처럼 또 다른 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답니다. 또 자신의 소중한 덩이뿌리를 멧돼지나 그 밖의 동물들이 먹어 삼키지 않게 많은 장치를 해 놓고 있지요. 

덩이뿌리아래의 줄뿌리가 그 자체로 땅 속 깊이 끌어당기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정작 그 자신의 줄기는 그 덩이뿌리 장소에서 벗어나 약간 떨어진 장소에서 땅위로 올라오도록 계획했습니다. 

설혹 다른 짐승들에게 먹히더라도 작은 조각이나마 남아있도록 애초에 덩이뿌리는 여러조각으로 조각나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답니다.  어떻습니까? 이쯤되면 용의주도함이 거의 고수에 가깝다고 저는 평가됩니다. 여름날 우아한 참나리꽃의 이면에 이런 부지런함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한번은 반하의 알뿌리를 찾아 내려고 깊숙히 땅을 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하는 길쭉한 꽃의 생김새가 참 독특합니다. 맨 아래쪽의 암술과 그 윗쪽의 수술이 자리잡고 있는 그 내부구조가 제게는 무척이나 낯선 모양새입니다. 

뭔가 수상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파리를 매개체로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에 관해서도 예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반하는 향기로운 꽃향기가 아니라 썩은 고기 냄새를 피워 파리를 유혹한다고 하니 그 또한 특이합니다. 

끌리는 냄새를 쫓아 반하 내부로 날라 들어 온 파리를 가둬두었다가 파리가 가까스로 살아서 수술 옆의 비좁은 틈으로 빠져나갈때 꽃가루를 잔뜩 묻히는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파리를 골탕먹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하는 반하의 가루받이 방식이 참으로 유니크하고 섬뜩합니다. 잎과 뿌리가 없는 기생식물 새삼도 특별했지만 반하 역시 제게 예측을 불허하는 자연의 모습입니다. 

 

단풍잎 돼지풀은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하지만 저 자신이 한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풀입니다. 평범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잘 기억은 못하지만 언젠가 만나 본 적이 있는 풀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단풍잎 돼지풀은 환경에 따라 자기자신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하여 꽃을 피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마법사 같나요? 어쨌든 좋은 환경에 놓이면 자그만치 6미터 이상이나 키가 자란다고 합니다. 한해 살이 잡초로는 그야말로 놀라운 크기 변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연농법으로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아마 좋은 풀거름 감이라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습니다. 

반면 열악한 환경에 놓이면 그 환경에 맞춰 자기자신을 작은 몸으로 만든다고 하는 데, 그 모습이 못 알아 볼 정도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변신의 폭이 워낙 커서 입니다. 괜히 변신의 마술사가 아니랍니다. 좋은 환경이였다면 6미터이상 자랄 수 있으면서도 열악한 환경에서는 자신을 작디작게 조절할 줄도 아는 단풍잎 돼지풀의 담대한 유연성이 저는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드레쉬한 느낌의 노란 꽃이 참 자연스러워 달맞이 꽃을 저는 좋아한답니다. 큰 달맞이 꽃은 해가 저물고 나서 일제히 꽃을 피웁니다. 밤에 참새 나방을 기다려 가루받이를 합니다. 아쉽지만 도시에서 자라나 전 달맞이 꽃을 볼 기회가 자주 없었답니다. 

놀랍게도 달맞이 꽃이 꽃잎을 열때 우리 육안으로 느낄 수 있는 스피드로 그 꽃잎을 펼친다고 이 책에서 알려 주었습니다. 

꽃송이가 큰 달맞이 꽃의 개화장면이 마치 연속사진을 보는 것 같고, 참 아름답다고 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큰 꽃송이의 달맞이꽃의 개화순간을 눈으로 직접 지켜볼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논에 응당 떠있는 무수히 많은 작은 초록 잎들을 저는 개구리밥이라고 불러왔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이름은 부평초라고 하는데, 그 증식능력이 탁월해 논에서 순식간에 100일에 400만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 몸의 구조를 최대한 단순화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추측 해 봅니다. 잎처럼 떠있는 것이 실은 잎이 아니라 줄기를 변형시켜서 잎처럼 만든 특수기관이였다니 참 흥미롭습니다. 겉보기에 고 자그마한 잎, 달랑 하나에 뿌리가 몇가닥 달려있는 매우 단순한 모습이지만 부평초의 그 잎 아닌 잎은 참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뿌리 역시 필요한 만큼만 물에 잠기도록 닻 역할을 할 정도로만 자라나 있습니다. 자연의 모습이 그렇듯 부평초의 모습에서도 그 어떤 불필요성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최소가 가장 최대가 되도록 몸의 구조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최소가 최대가 되도록 삶의 순간순간을 펼쳐 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저또한 가지고 있답니다.

 

끝으로 이 책 '풀들의 전략'은 자칫 하찮게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작디 작은 개구리밥을 결코 하찮게 보고 지나칠 수 없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자칫 하찮게 보고 지나칠 수 있는 거친 이 땅위의 모든 잡초들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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